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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정신과 서재_#3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우울증 극복 독서록
#3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한번쯤 이름을 들어봄직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약간의 긴장감과 부담감이 있다. 어쩐지 이정도 책은 읽어줘야 교양인인 것 같은데, 책이 막상 잘 읽히지 않으면 내 교양수준이 떨어지나 싶어 마주하기 싫어 지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나한테 그런 책이어서, 2-3번 읽으려고 도전했다가 몇 장 읽지 않고 덮었던 책이다.
신기하게도 네 번째로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많은 사랑이야기 이후에 얼마나 평범하고 지독하며 감동적인 인생이 남아있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의 구조는 특이하게도 한 커플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중간중간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레이션을 곁들이고 있다. 마치 KBS에서 방영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류의 관찰예능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남녀가 연인에서 부부, 부부에서 부모가 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관찰해볼 수 있고 그것과 관련된 사랑의 해석을 함께 즐길 수 있다. 1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하고 특별한, 영화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커플도 마치 본인들만의 특별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연애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것처럼 행동해도 그 것이 ‘그 후의 일상’까지 쭉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트라우마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부모가 되면서 달라진 역할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갈등을 겪어낸다.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을 때 설렘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 삶에 찌들어 섹스가 어색해지는 순간들은 우리가 정말로 겪고 있는 사랑과 너무나 닮아 있다. 사랑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그 모든 권태와 불안들을 겪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순간들을 지나쳐 내고도 결국엔 지금 함께 있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고 애틋함을 느끼면서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키워간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또 그만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고싶은 이들에게, 혹은 그러한 사랑이야기 안에서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해설을 보고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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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녀커플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만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커플 (가령 동성커플)이라도 공감할 요소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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