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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정신과 서재_#14 미녀, 야수에 맞서다
우울증 극복 독서록
#14 미녀, 야수에 맞서다 / 엘렌 스노틀랜드
나에게 있어, 세상은 그리 안전하지 않은 곳이었다. 실제로 세상이 ‘실질적으로’ 나를 얼마나 위협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그래서 세상을 위험하게 여기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난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택시를 타는 것을 내심 두려워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택시는 매우 위험하고 납치당할 수 있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면 항상 모바일 지도를 켜고, 기사님의 자제분들을 칭찬하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최선의 경계를 해왔다.
택시에 대한 두려움은 대표적인 에피소드일 뿐, 굉장히 다양한 삶의 태도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남동생은 여행을 가도 되지만 나는 안되는 사실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세상이 위험하고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것이 자명하므로 분하게 여기는 것 외에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거나 하교길에서 바바리맨을 만났던 것 등등의 사건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위험한 곳으로 여기는 바람에 잃게 되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다. 실제 범죄를 당할 확률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행동 반경을 넓혀갈 수 있었고, 덕분에 시야를 넓힐 좋은 기회들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발전시킨 것에 대해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겼는데, 그 와중에서도 그저 나에게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실제로 내가 범죄상황에 맞닥트렸을 때는 내가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녀, 야수에 맞서다』 는 자신을 방어해야 할 순간에 어떻게 물리적으로 위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허황된 것이 아니고 실제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음을 실제 수강생의 사례를 통해서 알려준다. 이에 더 나아가서 단순히 자기 방어 방법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왜 자기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논한다. ‘신체적 열세로 남성 범죄자에게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짓 믿음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고 범죄 가해자는 완벽한 신이 아닌 내가 저항해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만으로도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다.
밤길이 무서운 여성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나 주로 다루는 내용이 여성피해자가 남성가해자를 압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므로, 남성의 시각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1 하지만 여성 가족, 지인들이 너무 위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느껴진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것과 별개로 책에서 소개하는 자기방어 프로그램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폭력을 직접 써본 경험이 없다면 상대가 아무리 범죄자여도 치명상을 입일 수 있는 반격을 하는 것이 주저될 수도 있다. 여성이 아니더라도 특히 신체적 열세에 놓인 아이들이나 실전싸움을 해보지 않은 많은 남성들도 모두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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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를 압도하는 방법으로 (당연하게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고환을 공격하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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