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정신과 서재_#12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우울증 극복 독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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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 김혜남

책을 읽는 오늘, 강한 태풍이 불어 창밖으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김혜남 작가의 책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는 이렇게 춥고 비오는 날, 따뜻한 차 한잔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자기계발서나 지식전달서를 보다 보면 비슷비슷한 사례와 내용에 지루해질 때도 있는데, 한 사람의 인생은 서로 다른 독특한 장르의 영화 같아서 에세이는 읽어도 지루해지지가 않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내 인생에도 끼워 넣고 싶은 멋진 명장면이 있기도 하고 함께 보듬고 울어주고 싶은 슬픈 장면들까지 모두 하나하나 새롭다.

김혜남 작가의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는 달콤 쌉싸름한 밀크티 같은 맛이 난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책이 잘 읽혀서 같은 저자의 다른 책들을 찾다가 이 책을 찾게 되었는데, 김혜남 작가 책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 공감되는 책이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기는 쉽지만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그 아픔이 현재 진행형이거나 자신에게 큰 상처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잔잔한 말투로 자신의 아픔에 대해 담담하게 말을 하는데 그러한 말투에 오히려 내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김혜남 작가는 정신과 전문의로, 국립정신병원과 개인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의사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책을 10권이상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긴 수련 끝에 개인병원을 낸지 일 년 이 채 되기 전에 파킨슨 병을 진단받아 20년째 병 투병 중인 환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책에 묻어나오는 씁쓸함은 그녀의 병 때문인 듯하다. 파킨슨 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몸의 떨림과 강직으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힘든 것이 주요 증상이다. 더욱이 치매나 망상 같은 지적장애 를 동반하기도 하니, 의학을 공부한 그녀로서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고통 속에서의 번민과 깨달음을 이야기할 때 내가 우울증 과정에서 겪었던 고민이 그대로 글로 표현되어 있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코앞의 연구실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 그 이전에 그냥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고작 아침에 일어나는 정도인데 해야 할 일은 이름있는 학회에 논문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었다. 저자는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코앞의 화장실을 가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에 신경을 쏟고 한 발자국을 딛는 것에 집중하니 어느새 화장실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내가 필요한 것도 그 한발자국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순간을 사는 것. 그것이 저자가 찾은 삶이 재미있는 이유였다. 뻔한 이야기가 저자의 삶의 고단함과 극복을 통해 마음에 깊이 와 닿게 만든 책이었다. 그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우리 삶의 고단함을 이겨낼 힘을 구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