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랩 걸, 호프 자렌

2019.10.18 WTM Book Club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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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Techmakers Book Club 멤버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책, 랩 걸

2019년 10월 18일 “랩 걸” 독서토론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과학 분야 연구에 대한 열정, 그와 달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야 했던 경험, 그리고 연애와 결혼 등, 연구자로서의 자신의 인생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느 식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묘사로 이루어진 챕터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챕터가 번갈아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저자가 식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자가 겪는 일들과 그에 대한 심정을 식물에 빗대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와 전공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및 기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과학 및 기술분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저자의 경우와 같이, 주위에 부모님이 과학자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천문대를 가거나, 부모님의 직장을 방문하는 등 그 분야에 쉽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가족에게는 항상 격려를 받기 때문에 여성이란 것이 이 분야에서 어떻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어릴 적 가족의 영향이 없었다면 이런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어릴 적 또래 친구들과 어울렸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기대되는 것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남자인 친구들이 대화하는 주제들 중에는 컴퓨터, 기계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했지만, 여자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런 얘기가 오고 가지 않았었다. 남자 형제들에겐 대를 이을 의무가 있고 공대 진학이 흔한 선택이었던 반면, 여자는 예쁘게 커서 시집을 가고, 공대에 진학하더라도 다수에 합류하지 못해 불편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렇게 주어지는 ‘여성성’에 꼭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더 반대로 행동하려고도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무언가 결핍되었다고 생각되기 쉬웠고, 화장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서 외모를 가꾸는 것이 여성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역할이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의 영향이 없는 여성의 경우, 대학에 가서 운 좋게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르고 지나갈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 한번도 살아있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고 …

보다 더 많은 여성에게 과학 기술 분야라는 선택지를 열어 주기 위해서는 멘토가 필요할 것 같다. 학생들이 흔히 접하는 미디어에서 여성 기술자들, 과학자들이 다뤄진다면 가족의 영향이 부재하더라도 이 분야에 진학하는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의 첫 연구와 새로운 발견

첫 뿌리가 감수하는 위험만큼 더 두려운 것은 없다. 운이 좋은 뿌리는 결국 물을 찾겠지만 첫 뿌리의 첫 임무는 닻을 내리는 것이다. 닻을 내려 떡잎을 한곳에 고정시키는 순간부터 그 때까지 누리던 수동적인 이동생활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게 된다.

숲에서 가장 작은 식물이니 자기 위에 있는 모든 식물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하는데 그러는동안 내내 그늘이라는 비참한 환경까지 견뎌내야한다.

저자는 첫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가 느끼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첫 뿌리에 대한 설명을 먼저 시작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각자의 상황과 첫 뿌리의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는 학부를 졸업하며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목표로 했던 수동적인 생활을 종료했다. 그리고 이미 훌륭한 사람들이 발전시켜온 분야에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여 자신만의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연구를 한다’고 말하면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 모험적인 면에 호기심을 보이며 귀를 기울일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열심히 일하다 보면 과학적으로 약간 흔들리는 부분도 잡아 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 처음으로 느낀 그 짜릿함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흥분감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 진짜 내 첫 이파리였다. 세상의 모든 대담한 씨앗들처럼 나도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거기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부분을 읽으며 학회나 워크숍에서 발표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을 공유했다. 비록 자신의 연구가 새롭고 완벽한 혁신은 아니더라도,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 연구를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고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짜릿함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진정한 과학자는 이미 정해진 실험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실험을 개발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낸다. 지시받은 일을 하는 단계와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단계 사이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는 중간 시점 정도에 일어난다. 여러 면에서 그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의사가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박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연구를 할 때 가장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이 누구도 한 적 없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인 것 같다. 누군가 해본 선례가 없다면 이것이 ‘옳은’일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혹시 이것이 시간, 노력, 자원의 낭비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지만, 연구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바로 이날을 위해 일하고 기다려왔다. 이 수수께끼를 마침내 해결함으로써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증명했고, 마침내 진정한 연구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 그러나 그 큰 만족감에도 그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좋은 과학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깨달은 동시에 지금까지 알던 여성들처럼 될 기회를 이제 공식적으로, 완전히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오가 되기도 전에 그 발견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곧 더 나이 들고 현명한 과학자가 내가 본 것은 사실 자기가 이미 추측했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 관찰 결과가 엄청난 발견은 아니고, 당연한 추측을 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그의 설명을 나는 공손한 자세로 들을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우주가 나만을 위해 정해놓은 작은 비밀을 잠깐이나마 손에 쥐고 있었다는, 그 온몸을 압도하는 달콤함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작은 비밀을 손에 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큰 비밀도 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 부분은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정말 잘 묘사한 부분인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증명한 것이 누군가는 뻔하다고 할 수 있는 발견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었다는 데서 오는 반짝거리는 감정과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대견함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감정을 알게 된 이상 다른 편안한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홀로 걸어가야 할 길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장 외로운 순간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자연과학 계열, 기초연구의 힘든 점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나는 일주일에 40시간은 폭발물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또다른 40시간은 곁가지로 진행하는 식물학 실험에 바치겠다는 기만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엄청나게 과로해야 했고, 모든 과학 프로젝트에 있기 마련인 후퇴와 작은 실패들에 대해 더욱 참을성이 없어지고 절박해졌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 당장 돈이 되고 누군가에게 빠른 이익을 가져다줄 폭발물 연구에 몰두해야 했다. 이처럼 순수하게 지식을 향유하기 위한 연구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연과학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을 보면, 그 과목에 순수한 흥미를 느껴서 해당 전공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졸업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자연과학 전공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전문직인 의대, 약대, 치대로 전향했다. 친구들은 기초 분야 연구를 계속하는 자신들의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면허가 나오고 앞으로의 진로의 큰 맥락이 정해져있는 곳으로 옮겼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과목을 순수하게 좋아해서 선택했던 똑똑한 학생들이 전문직으로 몰린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떤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이런 현상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학 분야의 여성 연구자

소개받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기 때문이다. 모두의 얼굴에는 이제 내게 익숙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여자가? 그럴 리가. 뭔가 실수가 있었겠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작은 말들이 쌓여 심리적으로 짓누르는 압박이 되고, 많은 여성들은 이를 이기지 못하거나 혹은 피하려고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여자는 이래서 안돼’라는 말에서 시작하는 성차별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성차별은 특히 여성이 임신했을때도 확실히 나타난다.

나도 내가 행복하고 기대에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쇼핑하고, 아기 방을 꾸미고, 배 안의 아기에게 사랑을 담아 말을 건네면서, 사랑의 결실을 기뻐하고, 내 자궁이 그득 찼다는 사실을 느긋하게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위의 부분은 저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사실 자체로 기뻐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구실은 임신한 여성을 배려하지 못했고, 그저 집 가서 쉴 것을 추천한다. 저자는 성차별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연구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아들을 출산한 후에도 능동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갈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여러 직업군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입사를 거절당하기도 하고, 직장 내에서 많은 남성들 사이에서 동등한 직원이 아닌 토큰으로 성적 대상화되기도 한다. 비교적 차별이 덜한 학교 안의 학생들은 이러한 경험을 모르기 때문에, 성차별은 옛날 일이고 여성들이 지금은 없는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는 의견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 평등을 이루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차별을 겪었을때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치며: 과학자로서의 마음가짐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학생들로서, 과학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개미에 빗대어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과학자로서 나는 정말 개미에 불과하다. 다른 개미들과 전혀 다르지 않고, 미흡하지만 보기보다 강하고, 나보다 훨씬 큰 무엇인가의 일부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함께 우리의 손주들의 손주들이 경외감을 느낄 무엇인가를 건설하고 있고, 그것을 건설하는 동안 할아버지들의 할아버지들이 남긴 투박한 지시사항을 날마다 들여다본다. 과학계를 이루는 작지만 살아 있는 부품으로서 나는 어둠 속에서 홀로 앉아 수없는 밤들을 지새웠다. 내 금속 촛불을 태우면서, 그리고 아린 가슴으로 낯선 세상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오랜 세월을 탐색하며 빚어진 소중한 비밀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나도 누구에겐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염원을 품고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컴퓨터과학 분야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게 되었고, 신기술의 등장은 더 빠르고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 저자처럼, 큰 개발자/연구자 그룹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작은 부분이라도 후대에 남을 것을 만들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 금전적인 어려움, 성차별 등으로 인해 외롭고 막막해질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성취해 나가면서, 여성들을 포함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 그래서 힘들게 나아갔던 우리의 행보가 후대의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괜찮은 선례로서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